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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 해설가의 나무 이야기 - 느티나무

유미란 기자 입력 2026.07.07 17:32 수정 2026.07.07 05:32

당신은 이웃을 시원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

한낮의 도시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연일 폭염경보가 휴대전화를 울리고,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도착한다. 사람들은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 몸을 피하지만, 차가운 냉기는 더위를 잠시 잊게 할 뿐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강변 나루터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찾아간다.

↑↑ [지치고 힘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나무 아래 마련되어있다.]
ⓒ 동부중앙신문

뜨겁게 달궈진 길을 걷다가 초록 잎이 드리운 그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세상이 달라진다. 공기의 결이 바뀌고 청량한 상쾌함이 스며든다. 피부를 스치는 서늘한 기운은 계곡의 물안개처럼 깊고 부드럽다.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에어컨은 공기를 식히지만, 나무는 사람을 식힌다. 느티나무 아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 천 년을 살아온 생명의 철학이 들려오는 듯하다. 책을 읽지도, 강연을 들은 적도 없는 나무지만, 삶에 대해서는 어떤 철학자보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 치우침이 없이 사방으로 잘 자란 가지가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 동부중앙신문

느티나무는 오래 살기 위해 하늘을 독차지하지 않았다. 거대한 줄기 하나로 높이만 자라지 않고 사방으로 가지를 펼쳤다. 수만 장의 잎은 햇빛을 잘게 나누어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품은 뒤 나머지는 아래로 흘려보낸다. 키 작은 풀과 이름 없는 꽃들까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그늘은 더욱 넓고 깊어진다.
더 놀라운 비밀도 있다. 느티나무는 잎에서 끊임없이 수분을 내보내는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의 온도를 낮춘다. 자신의 물을 내어주며 세상을 시원하게 만든다. 자신을 내어줄수록 주변은 더욱 시원해진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시간을 내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가진 것을 나눌 때 비로소 감사와 평화가 찾아온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삶은 편안한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

↑↑ 속을 비우고도 큰 그늘을 만드는 느티나무
ⓒ 동부중앙신문

수백 년 된 느티나무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줄기의 중심이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식물학에서 오래된 느티나무의 줄기 안에 생기는 공간을 공동(空洞, hollow)이라 한다. 이는 심재가 세월 속에서 균류와 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되면서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놀라운 것은 나무의 생명이 중심부가 아니라 껍질 안쪽의 살아 있는 조직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속이 비어도 느티나무는 수백 년, 때로는 천 년 가까이 살아간다.

느티나무가 일부러 자신을 비우는 것은 아니지만, 중심이 비어 있음에도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은 깊은 상징을 품고 있다. 노자는 “그릇은 비어 있어 쓰임이 있다”라고 말한다. 사람 역시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명예뿐 아니라 고집과 편견도 함께 쌓인다. 마음이 가득 차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좁아진다. 느티나무의 공동은 우리에게 묻는다. 오래 살아남는 힘은 무엇을 더 채우는 데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비워 낼 줄 아는 데 있는가. 그와 함께 고집과 편견도 쌓인다. 마음이 가득 찰수록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자리는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느티나무가 천 년을 살아온 이유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마을마다 정자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장을 열고, 혼례를 치렀으며, 풍년을 기원했다. 아이들은 뛰놀고, 어른들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느티나무는 누구에게도 그늘 값을 받지 않았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나그네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사람들은 그 은혜를 알았기에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았다. 나무가 사람을 지켰고, 사람은 다시 나무를 지켰다. 생명은 언제나 서로를 살리는 관계 속에서 오래 이어진다.
오늘도 도시는 뜨겁다. 빌딩은 열기를 뿜어내고, 사람들의 마음도 경쟁으로 달아오른다. 더 높이 오르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 애쓴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묵묵히 다른 길을 보여준다.
높이보다 그늘을 남기라고, 움켜쥐지 말고 베풀기를 권한다.

↑↑ [가을이 되면 건네는 단풍은 또 하나의 선물]
ⓒ 동부중앙신문

우리의 이름은 언젠가 잊힐지라도, 누군가가 “그 사람 덕분에 참 따뜻했고, 참 시원했다.”라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천 년을 살아남은 것은 거대한 몸집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한 것은 나무의 높이가 아니라 그늘이었다.
오늘도 강변의 느티나무는 말없이 서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웅변보다 깊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더 넓게 품어라. 조금 비워 두어라. 그리고 너의 그늘을 아끼지 말아라. 그것이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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